Untitled Document
[2011.12] 놀라움 vs. 즐거움
고종율 (admin)    2011/12/05 16:16:01


별로 놀 것이 없던 시절, 크리스마스는 참으로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방학을 하고 눈이 오고 저녁마다 모여 성탄절 준비를 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밤새워 놀다가 새벽 송을 도는 일도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실은 무엇이 좋은 것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저 마음만 즐거웠던 것인데도 말입니다. 왜 즐거웠는지, 무엇이 좋았는지 지금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그렇게 기쁘고 좋았었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합니다. 그만큼의 믿음이나 인식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뻤고, 감사했으며, 즐거웠습니다.
처음 우리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그 사건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두렵고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경험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을 천사가 알려주자 기도를 해왔던 사가랴도 “두려워”합니다(눅 1:12). 예수님의 수태를 알려주는 천사의 메시지에 마리아는 더욱 “두려워”했습니다(눅 1:30).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천사들이 알려주자 그들도 “두려워”합니다(눅 2:9). 그만큼 그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나신 사건만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달았을 때 “두려워”했고(눅 5:10), 회당장 야이로는 딸의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두려워”했습니다(눅 8:50). 제자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이 생명의 근원 되심을 들을 때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눅 12:7). 그분이 곧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며, 그분이 하시는 일이 곧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경험한 다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기쁨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즐거움과 경배가 찾아옵니다. 누가는 두려움 다음에 오는 기쁨과 찬양을 잊지 않고 기록합니다. 사가랴의 입에서 ‘찬송하리로다’라는 찬양이 터지고, 마리아의 입에서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이라는 찬송이 나옵니다. 베드로, 야이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두려움이 변하여 찬송이 되게 합니다. 놀라움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게 합니다. 갇힌 자가 자유함을 누리며, 눈 먼 자가 보게 되며, 억눌린 자가 해방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우리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 1:23)라고 했고,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에 오셨다”(요 18:37)라고 말합니다. 이 사실은 처음 들을 때는 기이하고 놀랍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놀라운 일이 변하여 즐거움이 됩니다. 그래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다시 오는 성탄절에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십니까? 처음 주님을 만나던 날, 가슴 졸이는 두려움에서 가슴 벅찬 환희를 경험했던 순간을 기억하며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입니다. 여전히 크리스마스는 놀라움과 즐거움이 함께 있습니다.


 


고종율 목사 파이디온 선교회 대표

삭제하시려는 댓글은 비회원이 작성한 댓글입니다.
등록시 입력하신 비밀번호가 일치해야만 삭제할 수 있습니다.
등록시 입력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사)파이디온선교회 | 고유번호: 120-82-11049 | 대표전화: 070-4099-7700 | Fax: 02-6919-2381 | 동역자 구함
(06588)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141-25 (방배동 882-33) 세일빌딩 | Mail: mjlee@paidion.org
Copyright ⓒ 2012 Paidion Ministries. All rights reserved. Hosting by 심플렉스인터넷(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