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은 지 벌써 두 달이 지났습니다. 더 부지런해지고, 더 좋은 부모가 되고, 더 말씀을 가까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었는데 아이들이 새 학기를 준비하는 봄을 맞이하며 되돌아보니 어느새 그 결심이 흐릿해져 있습니다. 이 두 달은 무의미한 것이었을까요?
제게는 이제 일곱 살이 된 딸이 있습니다. 아이는 자라며 한 번씩 어딘가에 깊이 몰두합니다. 그런데 이 시기는 생각보다 호되고 길게 이어집니다. 뒤집기를 시도하던 때가 그랬습니다. 울고 또 울고, 몇 날 며칠을 낑낑대며 몸을 뒤집으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답답해합니다. 답답하니 또다시 울기를 반복합니다. 첫 뒤집기를 영상에 담아 보겠다고 몇 주를 기다린 끝에야 훌쩍 몸을 뒤집는 감동적인 순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연필을 쥐게 된 이후에도 그랬습니다. 이것저것 끼적이던 아이는 언젠가부터 동그라미를 그리는 일에 한참을 매달렸습니다. 자기가 그린 동그라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같은 그림을 수십 번, 수백 번 다시 그렸고, 스케치북 몇 권을 동그라미로 채우고 나서야 삐뚤어진 자갈 같던 선이 동글동글 모양을 잡아갔습니다.
아이의 모습을 보며 새해에 ‘성장’을 저의 목표로 삼았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성장은 늘 불편함에서 시작됩니다. 단순히 힘들고 괴로운 감각이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것을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우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섭니다. 아이가 뒤집기를 시작한 것도 늘 같은 자리에 누워 같은 천장만 보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다른 것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아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그 불편함이 아이의 몸을 움직이게 만든 건 아닐까요? 동그라미를 그릴 때도 그렇습니다. 스스로 그린 동그라미에 아쉬움을 느끼고, 더 예쁜 동그라미를 그리기 위해 수없이 동그라미를 그려 본 것은 아닐까요?
어른인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더 나은 부모가 되고 싶고 더 나은 신앙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의 제 모습에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불편하고 부대끼는 마음은 우리 자신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작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불편함이 밀려올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도전해야 성장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 성장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모양이 조금 다르기도 합니다. ‘성장’을 생각할 때 흔히 곧은 직선의 모습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는 깔끔한 상승선 형태의 그래프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 삶은 그렇게 깔끔하고 예쁜 선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여러 번 덧대어 그려지고 겹쳐진 선과 닮아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 보면 이미 그려진 선 위에 또 다른 선이 덧대어지고 겹쳐진 자국들이 쌓입니다. 그리고 이런 반복의 과정을 거치면 우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의 뒤집기와 동그라미처럼 말입니다.
제 딸은 이제 뒤집기를 잘합니다. 동그라미도 잘 그립니다. 몇 날 며칠 울고불고 고생하던 시간을 거쳐,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것들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라면서 마주하는 고생은 성장의 과정에서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수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사랑, 경건, 그밖의 도전들도 성장의 여정에서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다 지난 후에는 어떤 부대끼는 일이라도 언젠가 숨 쉬듯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겨우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가지에서 작고 여린 잎들이 돋아납니다. 겨울 동안 나무의 뿌리가 깊게 박히며 더 견고해진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쉬지 않고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의 성장은 계절을 지나며 계속되고 있습니다.
새 학기를 맞아 새해에 했던 다짐들을 다시 꺼내 오늘의 새로운 선을 한 번 더 덧대어 그려봅니다. 불편함과 수고로움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계속하여 선들이 겹쳐질 때, 새로운 모습의 성장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며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성장해 가기를 원하십니다. 매일 선을 하나씩 그어가며, 중단 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장을 계속해 가는 봄이 되길 소원합니다.